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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한정선의 '프레젠테이션, 하나의 예술'을 읽고

한식홀릭 2013. 1. 21. 16:32

<저는 로봇이 아닙니다>

- 한정선의 프레젠테이션, 하나의 예술을 읽고

10주차

콜롬부스 6기 이은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수다쟁이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명분 하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면 왜 이 수다쟁이가 한 없이 작아지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그만큼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프레젠테이션이 중요시 되면서 평가를 받는 자리가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은 직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래서일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만 두려운 것이 아니니까.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수업시간에 사탕 하나를 받기 위해 혹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발표를 나서서 했었다. 수학여행 때는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해서 전교생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이랬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온갖 프레젠테이션의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곤 했었다.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업시간에 나와서 장기자랑을 했을 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청중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어디 한번 잘하나 보자.’와 같은 눈과 차갑고 경직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대일로 만나면 따뜻한 사람들이 프레젠터를 바라볼 때면 차갑게 돌변하곤 한다. 이는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과제를 준비하면서 같은 팀원과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능청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그의 비결(?)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는 프레젠테이션을 대화하듯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프레젠테이션도 하나의 대화이다. 나는 어쩌면 프레젠테이션을 대화와 같은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프레젠테이션을 격식이 있고, 나를 평가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억압해 왔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프레젠테이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격식을 차린 프레젠테이션뿐만이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든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프레젠테이션은 주례사,강의, 고백, 공연 등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프레젠테이션이 그리 딱딱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프레젠테이션이 하나의 대화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는 글을 쓴 지은이가 일방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을 전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와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처럼 프레젠테이션은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프레젠테이션이 내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주고 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항상 좋은 결과를 얻고자 했던 나의 프레젠테이션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프레젠테이션은 단지 전달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여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나의 프레젠테이션을 들고 있는 청중 중에서 고객을 끄덕이거나 관심을 보이는 청중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고, 힘이 났던 것도 프레젠테이션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내 마음을 울렸던 구절은 저자가 프레젠테이션을 기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프레젠터의 인격과 인생관이 모두 스며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과 대화를 조금만 나누어봐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도 비슷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거울이다. 그 동안 나의 프레젠테이션은 앵무새와 같은 로봇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떤 프레젠터로 기억되기를 바랄까.

아무리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더라도 신뢰를 얻을 수 없고, 비호감을 사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한다는 것이 프레젠테이션의 정석을 지켰다고 해서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프레젠테이션의 청중으로 참여하면서 이론으로는 완벽하지 못한 프레젠터를 많이 만나곤 했다. 분명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프레젠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받아서 공감하고, 설득을 당하기도 했다. 혹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프레젠터를 만났지만,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페레젠테이터의 스킬에만 집중했던 경험도 있었다. 이들 중 누가 더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부족은 했지만, 마음으로 전했던 프레젠터가 내 마음을 움직였고,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 사실을 예술적으로 전달하는 프레젠테이션을 강조했던 저자는 예술을 정작 시각적인 요소에만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닌지 아쉬웠다. 물론, 예술적인 시각 요소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예술 작품이 단지 멋있다는 이유로 훌륭하다고 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 깃들여진 예술가의 인생과 감성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감상자간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이 책에는 프레젠터의 인격과 인생관이 모두 스며드는 프레젠테이션에 가장 중요한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약간은 부족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프레젠테이션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프레젠터가 더 프레젠테이션을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프레젠테이션 스킬이 뛰어난 프레젠터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프레젠터가 되고 싶다.

스킬이 뛰어난다고 해서 훌륭한 프레젠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프레젠테이션은 자신감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숙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타고난 프레젠터는 아니지만, 더 진정성 있는 프레젠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