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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짐콜린스의 ‘Good to Great’을 읽고

한식홀릭 2013. 1. 21. 16:52

<2012 8 2>

- 짐콜린스의 ‘Good to Great’을 읽고

20주차

콜롬부스 6기 이은혜

 2011 5 31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혼자 버스를 기다리다가 메일을 확인하고 나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내가 탈락자라니. 자존심이 뭉개지고 한 방 얻어 맞은 듯한 기분에 참았던 눈물이 삐져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웃으며 다음에 보자며 인사했던 동기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 중이라고 말씀하셨던 사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동안 나는 내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것인가? ‘설마 나는 아니겠지.’했던 내게 설마가 사람 잡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꿈에서 조차 사장님뿐만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선배님들이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폐배자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한 편으로는 해방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연 당한 이가 솔로의 자유를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듯이 그 충격은 오래 지속되었다.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나는 현재 콜롬부스의 마지막 독후감 과제를 쓰고 있다. 그 때는 지금의 내가 다시 독후감을 쓰고 있을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다시 콜롬부스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굳이 왜 또 하냐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업을 미루면서까지 이를 선택했고, 시작한 김에 재도전이라는 이름을 퇴색시키지 않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던 내 모습을 보면 후회가 되지 않는다.

종종 몇몇 사람들은 설마 네가 또 탈락하겠냐며 부러워하던 이들도 있었다. ‘폐배자라는 꼬리표가 한 순간에 무슨 벼슬로 등극한 것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나를 더욱 자극했다. 나는 내 능력을 인정받아 당당하게 재도전을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그 동안 나는 ‘good’한 사람이 되어서 인정받고자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Good to Great>이라는 책에서는 ‘great’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는 나를 질타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굉장히 부끄러웠다. 나는 새로운 다짐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을 했으나, 그 동안 나는 너무 비겁했던 것 같다. 종종 많이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으면 내 거울을 들여다 보기를 두려워서 밖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족한 나라는 현실을 직시하기가 두려워서 자기 합리화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 직시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 동안 현실을 직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정말로 ‘OK’와 같이 괜찮아서 하는 말이 아닌 것에서 알 수 있듯이,우리는 예의와 격식을 차리느라 지나치게 배려를 했고, 그래서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직설적이고, 조금은 과감하게 들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콜롬부스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연습을 하면서 어떻게 변화해야 되는지를 배웠던 것 같다. 물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다 보면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을 똑바로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콜롬부스란 프로그램이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는 데 가차없이 엄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 버스에 타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해야만 하는 것도, 해서는 아니 되는 것들도 많았다. 이러한 규율을 지키면서 버스에 타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플라이휠을 한 바퀴씩 돌려 나아가고 있었다. 승부욕 때문에 잠시 흥분하고 금방 후회하던 일. 얼굴 붉히면서 에너지를 쏟아내다가도 의견을 하나로 모아 나아가면서 뿌듯함을 느꼈던 일. 사소한 것에도 칭찬 어린 말을 들으면 부끄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던 일. 시간과의 싸움에, 잠과의 싸움까지 하다가 일명 멘붕을 수십 번씩 경험하다가도 월요일 그 시간만 되면 정신 바짝 차리게 되었던 일.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못하고 혹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내가 부족한 것을 깨닫고, 현실에 직시하면서 그래도 나에게 가장 희망적으로 들렸던 것은 적합한 사람을 규정할 때에 지식과 기술의 수준보다는 가치관, 성격 등과 같이 좀 더 인간적인 면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나의 가치관과 태도에 따라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지난 번 워크샵에서 선배님들께서는 말씀하셨다. 잘해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가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운이 좋았던 것마냥 이야기하셨다. 선배님들이 콜롬부스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아마도 이러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콜롬부스는 작은 사회와도 같았다.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아의 욕구를 찾고자 시작했지만, 자아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보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사회에서 조차 나의 행복만을 찾으려고 한다면 파멸의 올가미에서 벗어 날 수 없듯이,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과 경쟁 속에서 타협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타인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탈락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왜 탈락을 했어야 했었는지 알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었던6기를 만나라고. 그리고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보면서 억울해도 보고 절망도 해보고 불안해 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때 항상 무언가 대단한 것을 찾으려다 보니 의미 있는 것을 찾는 데 실패하고는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냐보다 그 무엇을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5개월이라는 시간이 길었다면 길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지난 24년간을 살아왔던 내가 5개월이라는 시간으로 내가 성장하는 데에는 짧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성숙한 사람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미숙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진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좋다, 좋아.